초음파를 만들어내는 현실 세계의 여의봉
- 편집팀
- 2020년 4월 28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18일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의 영웅 손오공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손오공의 짝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무기 여의봉은 매우 단단한데도 그 길이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여의봉은 본래 신진철(神珍鐵)이라 하여 강과 바다의 깊이를 측정하는 데 쓰였다고 전해집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길이가 자유롭게 변하는 막대가 있다면, 여러 면에서 정말 편리하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인류도 강과 바다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 단단하고, 그 길이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막대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막대는 과연 무엇일까요?

초음파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최소 20Hz의 낮은 소리부터, 최대 20,000Hz의 높은 소리까지 밖에 인식하지 못합니다. 20,000Hz 이상의 진동수를 가지는 음파를 초음파라고 하는데, 이 초음파는 우리 생활 속에서 이용되는 곳이 많습니다. 일단 초음파는 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어, 분자 혼합이나 초음파 세척기에 활용됩니다. 또한, 초음파는 그 진동수가 큰 만큼 파장이 작아 물체에 반사되어 나올 때 세밀한 형태를 파악하기 적합해 초음파 영상에도 쓰입니다. 이처럼 의학, 화학 등 여러 분야에 널리 쓰이는 초음파가 사용되는 대표적인 곳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앞서 말한 바다의 깊이 측정, 즉 해저 지형 탐사에 활용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점이, 해저 끝 바닥까지 도달하는 강력한 초음파를 과연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그 답은, 자왜 현상(magnetostriction effect)에 있습니다.
자기장에 따라 길이가 변하는 막대
손오공에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길이가 변하는 막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자기장에 따라 길이가 변하는 자성체가 있습니다. 자성체 중에서도 특히 소프트 페라이트(soft ferrite)에서 이러한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위 간단한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듯이, 자성체 내부의 도메인(domain)이 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그 배열을 바꿉니다. 이 바뀌는 배열은 결과적으로 막대의 길이를 변화시키는 것이죠. 자기장에 따라 그 길이가 변하는 정도는 물질마다 다른 고유의 성질입니다. 여담으로, 위에서 막대의 가로 길이뿐만 아니라 세로 길이도 함께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막대에 어떠한 변형이 주어졌을 때, 가로 길이의 변화와 세로 길이의 변화 비율 또한 물질의 성질 중 하나인 푸아송 비(Poisson’s ratio)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결과는 13분 54초에 있습니다.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로 막대의 길이가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길이는 정말 조금 변합니다. 예를 들어 Mn-Zn 페라이트의 경우, 페라이트 1m 당 길어야 겨우 1μm 정도밖에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길이가 조금밖에 변하지 않아도, 꽤 강한 음파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군사들의 행진만으로 붕괴해 버린 프랑스의 앙제 다리처럼 말이죠.
고유진동수에 대하여
모든 물체에는 각자의 고유진동수(natural frequency)가 있습니다. 고유진동수의 정의는 역학계가 외력의 영향 없이 자유롭게 진동할 때의 진동수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용수철, 전기회로 등 여러 곳에 고유진동수가 존재합니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막대에도 고유진동수가 존재합니다. 보통 소리굽쇠를 치면 나는 특유의 울리는 소리, 줄에 매달린 막대를 치면 나오는 울리는 소리의 진동수가 바로 고유진동수입니다. 물론, 페라이트를 쳐도 울리는 소리가 발생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고유진동수가 막대에 존재합니다. 보통 발생하는 고유진동수에는 두 가지 모드(mode)가 있습니다. 바로 종 모드(longitudinal mode)와 휨 모드(flexural mode)입니다. 종 모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종파의 형태가 맞습니다. 막대의 길이, 밀도, 영률(Young’s modulus)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적 간단한 고유진동수에 해당하죠.

휘어지는 막대
물체의 고유진동수는 종파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휨 모드(flexural mode)는 마치 줄을 잡고 흔들 듯, 횡파 비슷한 모양의 파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유진동수를 구한 두 가지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오일러 베르누이 보 이론(Euler-Bernoulli beam theory)와 티모센코 보 이론(Timoshenko beam theory)가 있습니다. 티모센코 보 이론은 오일러 베르누이 보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정교합니다. 그러나, 긴 막대와 같이 너비보다 길이가 훨씬 긴 경우 비교적 간단한 오일러 베르누이 보 이론이 더 유용하게 쓰입니다.

위 수식은 오일러 베르누이 보 이론으로부터 유도된 막대의 고유진동수입니다. I는 막대의 단면 2차 모멘트이고, 원형 단면의 경우를 대입한 것입니다. 여기서 c1의 값은 약 1.5, c2의 값은 약 2.5 정도로 계산됩니다. 아까 소개한 FFT의 그래프도, 이 이론을 따릅니다.
에너지 증폭의 마술, 공진 현상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물체나 역학계는 각자의 고유진동수를 가집니다. 만약 외부에서 작용한 자극이 이 고유진동수에 맞추어 계속 주어진다면, 해당 역학계가 진동하는 진폭이 커져 에너지가 증가하게 됩니다. 이에 의해 음파가 발생하기도 하고, 구조물이 붕괴하기도 합니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프랑스 앙제 다리 붕괴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입니다. 군인들이 그저 발맞추어 걷는 것만으로 진동 에너지가 증폭되어 다리가 무너져 내린 것이죠. 이와 같은 원리로, 자성체를 둘러싼 코일을 통과하는 교류 전류가 만든 자기장이 자왜 현상을 일으키면, 막대 내부에는 변형력이 발생합니다. 이의 진동수가 막대의 고유진동수를 건드리게 되면, 음파가 발생하는 것이죠. 교류 전류의 진동수를 높여 초음파 영역에서 공진하도록 해, 강한 세기의 초음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위 FFT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교류 전류를 특정 진동수(여기서는 고유진동수의 절반)로 걸어주었을 때, 막대의 고유진동수 영역의 음파가 크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크게 들리는 11490Hz는, 앞서 페라이트를 쳤을 때 발생한 울리는 소리가 가지는 진동수 중 하나로, 막대의 고유진동수가 맞습니다.
바다의 깊이를 재는 막대
물론 막대는 가청 주파수 영역뿐만이 아닌, 초음파 영역에서도 고유진동수를 가집니다. 따라서 해당 진동수에서 공진을 일으키면, 높은 세기의 초음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막대 주위에 코일을 감고 공진을 일으킬 수 있는 진동수의 교류 전류를 흘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페라이트 막대의 자왜 현상을 이용한 초음파 발생은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초음파는 위에서 말했듯이, 대표적으로 해저 지형을 파악하는 데 쓰이죠.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의 여의봉과 그 성질 및 활용 면에 있어서 묘한 공통점을 이루는 것이 꽤 흥미롭습니다.
참고자료
[1] 2020 IYPT problem #4 – Singing Ferrite
[2] 『서유기』의 보물,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3] A. G. Olabi, "Design and Application of Magnetostrictive "MS" Materials".
[4] Caresta, Mauro. "Vibrations of a Free-Free Beam"
첨부 이미지 출처
[1] 『서유기』의 보물,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2] Magnetostriction, LibreTexts(Engineering), https://eng.libretexts.org/Bookshelves
[3] Bending,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ending
첨부 동영상 링크
[1] https://youtu.be/KAm7qAKAX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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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준화
발행호│2020년 봄호
키워드│#음향학 #전자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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