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화학상의 주인공 CRISPR, 너의 정체는?
- 편집팀
- 2020년 10월 14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7월 10일
유전자 조작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부터 GMO 식품에 대한 논란, 감자와 토마토를 결합한 ‘포마토’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한 주제입니다. 특히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리어 왔고, 이번 노벨 화학상에 선정된 주제인 CRISPR, 즉 크리스퍼는 현대의 유전자 편집 기술로 가장 각광받는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연 이 CRISPR-Cas9 시스템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두 명의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을까요?
CRISPR-Cas9이란?
CRISPR(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는 본래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수단 중 하나로, DNA 상의 특정한 염기서열을 뜻합니다. 이 염기서열은 크게 두 가지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CRISPR의 풀네임에서 ‘Palindromic Repeats’가 뜻하는 repetitive sequence(반복되는 서열)입니다. 이 부분은 DNA의 두 가닥 중 어느 가닥을 읽더라도 그 염기서열이 같은, 즉 palindromic하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두 번째는 ‘Interspaced’를 담당하는 spacer DNA입니다. 이 DNA 조각의 정체는 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를 감염시킬 때 사용한 염기 20개 정도 길이의 DNA 조각으로, 박테리아는 이 DNA 조각을 이용해 동일한 종류의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spacer DNA를 전사하게 되면 RNA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박테리오파지의 DNA 서열을 전사해 얻었으므로 상보적이기 때문에 침입한 DNA를 알아볼 수 있는 탐지기 역할을 합니다.
이 RNA 탐지기를 이용할 경찰관이 바로 Cas(CRISPR associated) 단백질입니다. 이 단백질은 CRISPR를 전사해 얻은 RNA를 이용해 박테리오파지가 주입한 DNA 조각을 식별하고 달라붙은 뒤 이를 잘라 냅니다. 이렇게 분해된 파지의 유전물질은 더 이상 복제되거나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박테리아는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3세대 유전자 가위의 특장점은?
CRISPR는 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립니다. 1, 2세대의 유전자 가위와는 무엇이 다르며,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1, 2세대의 유전자 가위들인 징크핑거뉴클레아제, 탈렌(TALENs)은 단백질이 DNA의 염기서열을 직접 인지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염기서열을 인지할 때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단백질을 다시 디자인하고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노력도, 물론 돈도 많이 소모됩니다. 그러나 CRISPR는 인식해야 할 DNA 염기서열이 달라지더라도 Cas9이라는 기본 단백질은 그대로 사용하고, 합성이 간편하며 구조가 간단한 RNA만 새로 만들어 결합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 유전자 가위에 비해 편리하고 대량 생산에 있어서도 큰 이점을 가집니다.
또한, 유전자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염기 하나를 수정할 수 있도록 Cas9 단백질을 변형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교정이 가능합니다.
크리스퍼를 둘러싼 특허권 분쟁
CRISPR의 특허를 놓고 2014년부터 분쟁을 벌여 온 두 연구팀이 있습니다.
유전자를 정밀 교정할 수 있는 CRISPR-Cas9을 처음 개발하고 실험에 성공한 것은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UC버클리 화학과), 그리고 같은 연구실에 있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였습니다. 다우드나 박사는 연구를 마친 2012년, 크리스퍼 기술이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리라고 예상하고 곧바로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화로웠던 2년이 지나고 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 공동설립)의 장 펑 교수가 이끄는 팀이 진핵생물에 적용할 수 있는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하고, 마찬가지로 특허를 출원하게 됩니다.
이들의 10개가 넘는 특허가 신속심사제도에 의해 다우드나 박사의 UC버클리 팀보다도 먼저 특허 심사를 통과하며 분쟁은 시작됩니다. UC버클리 측은 브로드연구소의 연구는 원천기술을 발명하고 처음 특허를 낸 다우드나 팀의 연구 성과에 편승한 것이므로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은 브로드연구소의 특허에는 진핵생물이라는 UC버클리 팀(원핵세포 관련 연구)과의 차별점이 있으며 RNA와 Cas9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정했고, 이후 치열한 공방 끝에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는 유지됩니다.
COVID-19 대항할 무기도 크리스퍼?
크리스퍼는 유전자 가위뿐만 아니라 최근 전 세계 최대 관심사인 COVID의 진단,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2016년, CRISPR-Cas 시스템이 DNA뿐만 아니라 RNA도 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진핵세포 생명체들은 이중 가닥인 DNA로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한편, 바이러스 중에는 단일 가닥인 RNA를 이용하는 종류가 다수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CRISPR-Cas 시스템이 단순히 유전자 편집에만 국한된 기술이 아니며 바이러스 감염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대유행하며 과학자들은 크리스퍼의 바이러스 진단 가능성에 주목했고, 이를 이용한 진단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현재 각광받고 있는 기술은 형광 RNA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기존 24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던 핵산 증폭(PCR) 타입의 검사 방법과는 다르게 한 시간 내에 COVID-19 진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과학자들은 감지한 DNA가 아닌 표지용 DNA 또는 RNA를 잘라 형광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Cas 단백질을 이용했습니다. 이 단백질에 코로나의 RNA를 감지할 표본 RNA를 결합하고 코로나 RNA에 단백질이 결합하면 활성화되어 형광을 나타낼 DNA 또는 RNA를 준비하면 코로나 검사의 준비는 완료됩니다. 여기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할 방법에 따라 세부적인 진단법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레이저를 활용한 방법입니다. 모든 분자는 고유한 흡수 파장대를 가지는데, 분자의 구조나 크기 등이 달라지면 그 흡수 파장대 또한 달라집니다. Cas 단백질이 RNA 가닥을 잘라낼 때도 마찬가지로 흡수 파장대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Cas 단백질에 의해 잘린 RNA 가닥만이 흡수하는 파장의 레이저를 비추어 주면 코로나 RNA가 있을 때만 형광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방법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뿐만 아니라 형광의 세기를 측정해 그 양까지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현재의 임신테스트기와 비슷한 테스터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테스터 상의 검체가 지나갈 길에는 두 가지의 화학 물질로 이루어진 선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선에서는 잘리지 않은 DNA 가닥이 붙잡히기 때문에 이곳에 색이 나타난다면 화학물질이 올바르게 존재한다는, 즉 테스터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선에서는 Cas 단백질에 의해 잘린 가닥이 붙잡히기 때문에 이곳에 색이 나타난다면 Cas 단백질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COVID-19 바이러스가 몸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 테스터기가 상용화된다면 누구나, 어디서나 빠르고 편리하게 코로나 검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CRISPR-Cas 시스템의 본질은 침입한 유전 물질을 분해하는 면역 체계이기 때문에 코로나 등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Cas 단백질-RNA 조각 복합체를 이용해 증상을 완화하거나 질병 자체를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지금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실제로 쥐에서 HIV(에이즈 원인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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